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 보유한 상장사 287곳의 주식 평가액이 6월 말 515조원대에서 10월 중순 333조원대로 석 달 반 만에 182조원 넘게 줄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아직 팔지 않은 주식의 장부상 평가액이고, 국민연금 수령액은 기금 수익률이 아니라 가입 기간과 소득으로 정해지는 확정급여라 평가액이 줄어도 약속된 연금액은 바뀌지 않는다. 운용 손실이 실제로 건드리는 것은 개인 수령액이 아니라 기금 소진 시점이므로, 가입자는 평가액 뉴스보다 자신의 가입 기간과 예상연금액을 먼저 확인하는 편이 낫다.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들고 있는 상장사 287곳의 주식 평가액은 6월 말 515조원대에서 10월 15일 333조원대로 내려앉았다. 세계일보 보도 기준 석 달 반 만에 182조원, 비율로는 35.3%가 줄었다. 분기 단위로 평가액이 감소한 것은 7분기 만이고, 감소 폭은 역대 최대 수준이다.
줄어든 돈의 대부분은 반도체 두 종목에서 나왔다. SK하이닉스에서 74조원, 삼성전자에서 57조원가량이 빠져 두 종목이 전체 감소액의 71.8%를 차지했다. 10월 중순 한 주 사이에 SK하이닉스 주가가 24%, 삼성전자가 18% 하락한 결과다.
여기서 먼저 구분할 것이 있다. 이 숫자는 보유 주식을 실제로 판 '실현 손실'이 아니라, 아직 들고 있는 주식의 시가를 다시 매긴 장부상 평가액이다. 주가가 오르면 평가액도 되돌아온다. 실제로 2025년 국민연금은 231조원을 벌어 18.8%라는 역대 최고 수익률을 기록했는데, 그때도 그 숫자가 누군가의 연금을 늘려 준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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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낸 돈을 굴려 그 성과만큼 돌려주는 적립식 상품이 아니다. 받을 금액이 법으로 미리 정해지는 확정급여 방식이다. 노령연금액은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과 내 가입 기간, 내가 번 소득으로 계산되는 공식에 따라 산출된다. 이 공식 어디에도 기금이 올해 얼마를 벌었는지, 평가액이 얼마나 줄었는지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기금 평가액이 182조원 줄어도, 반대로 지난해처럼 231조원을 벌어도, 이미 산출돼 있는 내 예상연금액은 그대로다. 매달 내는 보험료도 평가액과 무관하다. 보험료는 기준소득월액에 정해진 보험료율을 곱해 나오는 값이지, 기금이 손실을 봤다고 더 걷어 가는 구조가 아니다.
그렇다면 손실은 아무 의미가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기금 수익률이 낮으면 쌓아 둔 돈이 줄어드는 시점, 곧 기금 소진 시점이 앞당겨진다. 정부는 2025년 3월 연금개혁에서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을 43%로 올리면서 기금 소진 시점이 2056년에서 2071년으로 늦춰진다고 밝혔다. 운용 성과는 이 시점을 밀거나 당기는 변수이지, 개별 가입자에게 약속된 급여를 깎는 장치가 아니다.
다만 이 대목이 많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기금이 바닥나면 연금을 못 받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국민연금법 제3조의2는 국가가 연금급여를 지속적·안정적으로 지급하도록 필요한 시책을 세우고 시행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2025년 개혁에서는 국가의 지급 보장을 명문화하는 내용도 함께 담겼다. 다만 이 조항이 재원이 부족할 때 국가가 반드시 메워야 하는 강제 규정인지를 두고는 해석이 갈린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의무 규정으로 보기 어렵다고 해석해 왔고, 그래서 공무원·군인연금처럼 지급 책임을 더 분명히 하자는 입법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올해의 평가액 감소가 이 지급 보장 논의와는 다른 층위의 문제라는 점이다. 평가손은 기금의 장부상 숫자이고, 지급 보장은 제도 설계의 문제다. 둘을 한 덩어리로 묶으면 불안만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