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 소속이어도 산재보험은 노동자 본인이 원청·하청의 동의 없이 근로복지공단에 단독으로 신청할 수 있고, 원청 책임은 이와 별개로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처벌법·민사배상으로 나뉜다. 산재는 과실을 따지지 않는 보험급여이고 원청 처벌·배상은 요건과 절차가 달라 두 가지를 동시에 챙겨야 한다. 원청 책임은 사고 장소와 시설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했는지가 갈림길이므로, 사고 직후 현장 기록과 작업지시 증거를 확보해 두는 것이 핵심이다.
원청 공장에서 일하다 다쳤을 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산재 신청의 주체가 회사가 아니라 다친 노동자 본인이라는 점이다. 협력업체 소속이어도 산재보험은 똑같이 적용되고, 사망 사고라면 유족이 신청한다.
치료가 4일 이상 필요한 부상이면 산재보험 대상이 된다. 사업주의 날인이나 동의는 법적 요건이 아니다. 하청 사업주가 협조하지 않아도 관할 근로복지공단 지사에 요양급여 신청서를 직접 내면 공단이 사실관계를 조사해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한다. 사업주가 접수를 막는다고 신청이 무산되지 않는다.
주의할 것은 '공상처리' 권유다. 산재 대신 회사가 치료비를 주고 합의하자는 제안인데, 서명하면 산재 기록이 남지 않고 이후 장해·재발 보상이 막힐 수 있다. 하청 현장에서 산재 건수가 늘면 불이익을 준다는 이유로 공상처리를 압박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Photo by Cemrecan Yurtman on Unsplash
여기서 헷갈리기 쉬운 지점을 짚어야 한다. 산재보험 급여와 원청에 대한 책임 추궁은 별개의 절차다.
산재보험은 과실을 따지지 않는 보험급여다. 누구 잘못인지와 무관하게 요양·휴업·장해·유족 급여가 나온다. 반면 원청 책임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중대재해처벌법, 그리고 민사 손해배상으로 나뉜다. 산재 처리를 받았다고 원청 책임이 사라지지 않고, 반대로 산재가 인정돼도 원청 처벌은 별도로 따져야 한다.
원청이 어디까지 책임지는지는 장소와 시설에 대한 지배력에서 갈린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은 자신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근로자에게 인적·물적 시설과 장비가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할 의무를 진다. 다만 법원은 구체적인 작업 방법이나 역할 분담까지 도급인이 직접 책임지지는 않고 그 부분은 수급인의 몫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핵심은 사고가 난 장소다. 원청 사업장 안이거나 원청이 유해·위험요인을 관리·통제할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곳이라면 원청 책임이 인정될 여지가 크다. 반대로 하청의 독립된 사업장에서 벌어진 일이면 원칙적으로 원청 의무가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사고 장소와 지시 체계를 입증할 기록이 중요하다.
사망처럼 중대한 사고라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작동한다. 이 법 제5조는 도급·용역·위탁 관계에서 원청의 경영책임자가 수급인 종사자에 대해서도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지도록 했다. 역시 시설·장비·장소를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경우라는 단서가 붙는다.
여기서 종사자는 계약 형식과 상관없이 대가를 받고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을 모두 포함하고, 여러 단계의 하도급이 있으면 각 단계 수급인과 그 노동자까지 들어간다. 사망 사고로 의무 위반이 인정되면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고, 둘을 함께 부과할 수도 있다. 민사에서는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인정되면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도 가능하다.
지난 10월 18일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설비를 보수하던 협력업체 소속 4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졌다. 경찰은 중대재해처벌법과 업무상과실치사 적용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아직 적용이 확정된 단계는 아니다. 현대제철은 2022년 대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전례가 있다.
책임을 묻는 일은 결국 증거 싸움이다. 사고 직후 다음을 챙겨두면 산재 신청과 원청 책임 추궁 양쪽에서 쓸 수 있다.
상담은 산재보험 쪽은 근로복지공단(1588-0075), 안전·감독 쪽은 고용노동부 고객상담센터(1350)로 나눠 문의하면 된다. 산재 신청과 원청 책임은 요건이 다른 만큼 두 창구를 함께 활용하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