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교육위원회가 수능에 서·논술형 문항과 전 과목 절대평가 도입을 검토하면서 채점 공정성과 사교육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 이면에는 55만 명의 답안을 채점하고 이의제기·소송까지 감당해야 할 현직 교사의 업무량과 준비 부담이 있다. 국교위는 10월 말 시안 공개와 공론화를 거쳐 2027년 3월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전 과목 절대평가로 바꾸고 서·논술형 문항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교위 대입제도 특별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이 개편은 객관식 위주의 시험에서 벗어나 학생의 사고력과 표현력을 평가하겠다는 취지다. 논의 대상이 30년 넘은 수능의 틀이다 보니 채점 공정성과 사교육 부담이 곧바로 쟁점에 올랐다.
그런데 이 논의에서 자주 가려지는 당사자가 있다. 실제로 답안을 채점하고 관련 민원을 감당해야 할 현직 교사다.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서·논술형 전환은 교사의 업무량과 책임을 구조적으로 늘리는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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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부터 만만치 않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2026학년도 수능 응시생은 55만4,174명이었다. 이 인원의 서술형·논술형 답안을 채점하려면 최소 수천 명 규모의 채점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객관식이라면 기계가 처리하던 몫이 사람의 손으로 넘어오는 셈이다.
시간도 문제다. 지금은 수능 후 약 3주 안에 성적이 통지되지만, 서·논술형은 이 속도로 채점을 끝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점 인력을 대규모로 동원하면 이번에는 채점자마다 점수가 갈리는 편차를 줄이는 일이 새로운 과제가 된다. 같은 답안을 두고 채점 기준과 채점자에 따라 점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채점 기준표 작성, 사전 연수, 교차 검증까지 교사가 감당할 준비 부담이 앞뒤로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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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AI 평가 지원 시스템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서울시교육청의 '채움AI', 경기도교육청의 '하이러닝'처럼 이미 운영 중인 시스템을 활용하고, 중·고교 내신 평가에 먼저 도입해 채점 데이터를 쌓은 뒤 수능에 적용한다는 구상이다. 서울 초중고 66곳에서는 AI가 논술 평가 채점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다만 현장에서는 AI가 부담을 완전히 덜어주진 못한다고 본다. AI 채점이 "채점 인력이 한 명 더 생기는 효과"는 있지만, 최종 판단은 결국 사람에게 남는다. 오히려 AI 채점 결과를 사람이 다시 검토하는 과정에서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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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단체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채점 이후다. 중등교사노동조합 위원장은 서·논술형 평가가 확대되면 교사가 평가와 기록 부담이 커지는 것은 물론, 성적 이의제기와 민원, 감사와 소송 책임까지 감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역시 평가 점수에 따라 대입 당락이 갈리는 만큼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학부모의 행정심판·행정소송이 급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교사에게 이는 단순한 업무 추가가 아니라 법적 책임의 확대다. 채점 기준을 어떻게 세웠고 왜 그 점수를 줬는지 설명하고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 일상이 될 수 있다. 현장 여건, 즉 채점 시간·인력·법적 보호 장치가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개편의 취지와 무관하게 교사의 소진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이 변화는 아직 확정이 아니다. 국교위는 10월 말 '국가교육발전계획' 시안을 공개하고, 11월 초 열흘간의 온라인 공청회와 전문가·교원·학생·학부모가 참여하는 공개 포럼, 숙의·공론화를 거쳐 2027년 3월 말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실제 적용은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이 치르는 2033학년도 대입부터가 유력하다.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은 채점 현장의 목소리가 설계에 반영될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채점 인력 충원, 채점 기간 현실화, 이의제기 대응 절차, 교사 법적 보호가 공론화 테이블에 함께 올라야 하는 이유다. 서·논술형 수능의 성패는 문항의 완성도만이 아니라, 그 답안을 채점하는 사람의 노동 조건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