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서울 가양동 영구임대아파트 화재로 중증 뇌병변 장애를 앓던 어머니와 그를 간병하던 아들이 함께 숨졌고, 사흘 전 수원에서도 거동이 불편한 모녀가 같은 방식으로 목숨을 잃었다.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는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는 구조여서 화재 같은 비상 상황의 대피를 상시 책임지도록 설계돼 있지 않고, 결국 대피는 가족의 몫으로 남는다. 돌봄 인력의 시간 공백과 노후 영구임대의 스프링클러 부재라는 두 겹의 빈자리가 이번 참사에서 함께 드러났다.
8월 11일 오후,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15층에서 불이 났다. 이 불로 10년 가까이 중증 뇌병변 장애를 앓아 온 61세 어머니와, 홀로 부모를 모시며 어머니를 간병해 온 38세 아들이 함께 숨졌다. 두 사람은 아파트 화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소방과 경찰은 불길을 피하려다 고층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한 이웃은 "엄마를 두고는 못 가니까 살리려다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같은 세대에 살던 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아 휠체어에 의지하는데, 외출 중이어서 화를 면했다.
주민 40여 명이 스스로 대피해 나온 불이었다. 그런데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과 그를 지키려던 가족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흘 전 경기 수원에서도 새벽 아파트 화재로 거동이 불편한 90대 어머니와 지체장애를 앓던 60대 딸이 함께 숨졌다. 두 사건 모두, 화재 자체보다 "혼자서는 대피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한 안전망이 비어 있었다는 점이 아프게 겹친다.

Gustavo Fring
장애인이 일상에서 기대는 대표적 돌봄이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다. 활동지원사가 집을 방문해 신체활동·가사·이동을 돕는 제도로, 여기에는 '이동 보조'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 제도가 화재 같은 비상 상황의 대피를 책임지도록 설계돼 있지는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다. 활동지원사는 상주 인력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는 노동자다. 보건복지부 종합조사 점수에 따라 월 지원 시간이 정해지는데, 최중증·독거 장애인이 중앙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그러모아도 하루 24시간을 채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장애계 매체 비마이너의 분석을 보면 합산해도 하루 평균 12시간 안팎에 그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활동지원사가 없는 시간, 특히 심야에 불이 나면 대피를 물리적으로 도울 사람 자체가 곁에 없다. 야간에 잠깐씩 방문하는 야간순회방문서비스가 있지만 이는 활동지원을 '보완'할 뿐 상주 돌봄을 '대체'하지 못한다.
결국 재난 순간의 대피는 대개 가족의 몫으로 남는다. 이번 사건도 아들의 간병에 기댄 구조였고, 그 아들마저 어머니를 대피시키려다 함께 숨졌다. 돌봄이 가족에게 떠넘겨진 자리에서, 재난은 한 사람이 아니라 돌보던 이까지 함께 삼켰다.
Photo by C Cai on Unsplash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공백은 두 겹이다. 하나는 사람이다. 소방과 지자체는 장애 유형별 재난대피 매뉴얼과 피난약자 대책을 두고 있지만, 상당수는 요양병원·복지시설 같은 '시설' 중심이다. 자기 집에 사는 재가 중증장애인 곁에서 재난 순간 대피를 도울 상시 인력은 사실상 없다. 그래서 장애계는 오래전부터 최중증·독거 장애인에게 하루 최대 24시간 활동지원을 보장하라고 요구해 왔다. 활동지원 노동은 곧 생명과 직결된 노동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건물이다. 노후 영구임대아파트에는 스프링클러가 없는 곳이 많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LH가 관리하는 영구임대 14만여 가구 가운데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곳은 약 2.8%에 불과하다. 영구임대는 노인과 장애인이 밀집해 사는데, 정작 초기 진화 설비는 대부분 빠져 있는 셈이다. 이번에 불이 난 아파트도 1992년에 지어져 스프링클러 의무 대상이 아니었다.
돌봄 인력의 시간을 늘리는 일도, 노후 임대주택에 피난 설비를 채우는 일도 결국 예산과 제도의 문제다. 이번 참사는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비어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 줬다. 장애인 가족을 돌보는 이들이라면, 활동지원 시간이 실제로 어떤 시간대를 비우고 있는지, 사는 집에 기초적인 피난 설비가 갖춰져 있는지부터 점검해 둘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