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현장 수습 같은 위험 업무에서 생긴 PTSD·우울증 등 정신질환도 업무와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산재나 공무상재해로 보상받을 수 있다. 다만 '스트레스가 심했다'는 호소만으로는 어렵고, 구체적 진단명과 업무 관련성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있어야 인정 가능성이 높아진다. 신청 전에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서와 사건 경위 자료, 진료기록을 갖추고 자신의 보상 경로를 확인해 두는 편이 안전하다.

몸을 다쳐야만 산업재해인 것은 아니다. 재난 현장 수습이나 위험 업무 과정에서 생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 적응장애 같은 정신질환도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근로자라면 산업재해보상보험, 경찰·소방 같은 공무원이라면 공무상 재해라는 이름으로 치료비와 요양 기간을 보상받는 구조다.
법적 근거도 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3은 업무상 질병의 구체적 인정 기준을 두고 있고, 여기에는 정신질환도 포함된다. 최근 이태원 참사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들의 정신적 후유증이 희생자로 인정된 사례처럼, 신체 손상이 없어도 업무로 인한 정신질환이 재해로 받아들여지는 흐름은 뚜렷하다.

Vitaly Gariev
관건은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다. 공무상 재해든 산재든, 그 일을 했기 때문에 이 병이 생겼다는 연결고리가 인정돼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판정 과정에서 근로자의 성별, 나이, 건강 상태, 체질 등을 함께 고려한다.
여기서 실무상 자주 걸리는 지점이 진단명이다. 노무 현장에서는 스트레스가 심했다거나 번아웃이 왔다는 호소만으로는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본다. 우울증, 적응장애, PTSD, 공황장애처럼 진단 기준에 맞는 구체적 병명이 있어야 심사의 출발선에 설 수 있다. 그래서 증상을 느낀 시점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아 기록을 남기는 일이 중요하다.
신청 창구는 신분에 따라 갈린다. 민간 근로자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하고, 필요하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심의를 거친다. 공무원은 공무원연금공단을 통해 공무상 요양을 신청한다. 창구는 달라도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자료로 입증해야 한다는 원칙은 같으니, 먼저 자신이 어느 경로에 해당하는지부터 확인하는 게 순서다.
인정 여부는 결국 제출한 자료의 밀도에서 갈린다. 신청 전에 다음을 정리해 두면 심사에 유리하다.
핵심은 그 업무, 그 시점, 그 증상의 연결을 서류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건 직후에 남긴 기록일수록 인과관계 입증에 힘이 실린다.
승인을 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정신질환은 신체 부상과 달리 회복 시점을 딱 잘라 판단하기 어렵고, 치료가 장기간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요양 기간을 연장하려면 추가 치료의 필요성과 기간이 담긴 의사 소견서를 다시 제출해야 하고, 의무기록이나 검사 결과가 추가로 요구되기도 한다.
복직 뒤 재발했을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재발한 질환과 업무의 연관성이 다시 인정되지 않으면 승인을 못 받을 수 있다. 승인 대기와 병가 기간에는 수당이 줄어 경제적 부담이 커진다는 점도 미리 염두에 둬야 한다. 정신적 후유증에 대한 보상은 한 번의 신청이라기보다, 기록을 꾸준히 남기며 이어가는 긴 과정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