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정합의안이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과반 찬성을 얻지 못하면 부결되어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않고 노사는 다시 교섭 테이블에 앉는다. 앞서 노동위원회 조정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쟁의권을 확보해 둔 노조라면 파업이 다시 실질적인 카드로 되살아난다. 근로자는 기본급 인상률과 성과급 산정 방식, 일시금, 복지 항목을 이전 안이나 동종 업계와 비교해 잠정합의안을 판단할 수 있다.
잠정합의안이 부결되면 그 순간 확정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노사 교섭 대표들이 잠정적으로 손을 맞잡았을 뿐,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규약에서 조합원 총회나 총투표 인준을 단체협약 체결의 요건으로 못 박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하면 그 합의안은 효력을 갖지 못하고, 노사는 다시 교섭 테이블로 돌아간다.
실제로 2026년 8월 SK하이닉스 노사의 임단협 잠정합의안은 전자투표에서 찬성 49.92%(7510명), 반대 50.08%(7535명), 단 25표 차이로 부결됐다. 이후 노사는 성과급 지급 방식 등을 놓고 재협상에 나서기로 했다. 부결이 곧 협상 결렬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측이 내놓았던 조건이 조합원 눈높이에 못 미쳤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재교섭의 초점은 부결 사유가 됐던 항목에 맞춰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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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결 뉴스 뒤에 '다시 파업 국면'이라는 표현이 붙는 데는 이유가 있다. 관건은 그 노조가 이미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해 두었느냐다.
우리 노동법은 조정전치주의를 택하고 있다. 노동쟁의가 발생하면 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해야 하고, 이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쟁의행위 자체를 할 수 없다. 조정기간은 일반 사업이 신청일부터 10일, 공익사업은 15일이며, 노사 합의로 그 범위 안에서 연장할 수 있다. 노동위원회가 조정안을 냈을 때 한쪽이라도 거부하면 그때 비로소 노조는 쟁의행위에 들어갈 수 있다.
여기에 하나가 더 붙는다. 노동조합법 제41조는 쟁의행위를 조합원의 직접·비밀·무기명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해야만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이 요건을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 대상이 된다. 즉 조정 절차와 찬반투표라는 두 관문을 이미 통과해 쟁의권이 살아 있는 노조라면, 잠정합의안 부결과 동시에 다시 파업이 실행 가능한 선택지로 올라선다.
다만 확보해 둔 쟁의권을 언제든 무기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잠정합의로 분쟁이 사실상 정리됐다가 부결로 뒤집힌 경우, 앞서 밟았던 조정과 찬반투표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일률적인 답은 없다. 애초의 쟁점이 그대로이고 시간이 크게 흐르지 않았다면 기존 쟁의권을 이어 쓸 여지가 있지만, 교섭 대상이 실질적으로 바뀌었거나 상당한 기간이 지났다면 조정과 찬반투표를 새로 밟아야 한다는 것이 실무의 판단이다. 부결됐다고 곧바로 파업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재교섭이 먼저 열리고 그 결과에 따라 쟁의 절차가 다시 굴러가는 구조다.
찬성표를 던질지 반대표를 던질지는 결국 합의안의 내용에 달려 있다. 숫자 하나만 보고 판단하기보다 아래 항목을 이전 안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실익이 분명해진다.
기본급처럼 매년 쌓이는 조건이 약하고 일시금만 두툼한 안이라면, 눈앞의 총액이 커 보여도 몇 년 단위로는 불리할 수 있다. 반대로 파업이 길어질 때 감수할 무임금 부담까지 저울에 올려야 판단이 균형을 잡는다.